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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중앙대학교 교수로 재직한 소설가. 김동리(金東里)[1913~1995]는 한국 고유의 사상과 정신으로 근대가 가져온 파탄을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문학 활동을 전개한 문학인이다. 김동리는 1934년 시 「백로(白鷺)」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함으로써 등단하였다. 19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화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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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에 거주했던 판소리 중요무형문화재. 김명환(金命煥)[1913~1989]은 판소리 고법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현대 최고의 국악 이론가이다. 김명환은 만석꾼 김용현의 7남매중 막내로 태어나 장판개(張判介) 문하에서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20세 이후부터 박판석(朴判石)·신찬문(申贊文)·오성삼(吳聖三)·주봉현(朱鳳鉉) 등 명창의 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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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중앙대학교 출신의 소설가. 김원일(金源一)[1942~ ]은 “고등학생 작품 모집 때의 인연으로 김동리 선생이 계신 서라벌예술대학에 입학”했다고 말한 바 있다. 김원일의 회고에 따르면, 소설에서 ‘죽음’이라는 주제를 자주 다루게 된 것도 김동리의 영향에서 기인한다. 김원일은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에서 김용성, 신중신, 조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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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있는 중앙대학교에 출강했던 시인. 박목월(朴木月)[1915~1978]은 1933년 동시 「통딱딱 통딱딱」이 『어린이』에, 「제비맞이」가 『신가정』에 당선되면서 시단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후 줄곧 동시를 쓰고 있던 박목월은 1939년과 1940년에 걸쳐 정지용에 의해 『문장』에 「길처럼」, 「그것은 연륜이다」 등이 추천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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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있는 중앙대학교 출신의 소설가. 박상륭(朴常隆)[1940~2017]은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교에 입학하여 이문구와 함께 수학한다. 1963년 『사상계』에 가작 입선하였으며 1964년 『현대문학』에 「장끼전」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박상륭의 문학 세계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무는 것을 화두로 삼고 있으며, 이러한 화두는 기독교, 불교,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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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에 거주했던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박종호(朴宗鎬)[1927~2012]는 1950년대부터 활동한 영화감독이자 제작 및 기획자, 시나리오 작가이다. 박종호는 해방 이후 월남하여 신문학원을 다녔다. 총 41편 작품의 감독을 맡았고, 1980년대 초에 도미 후 미국에 거주하였다. 1958년 『아름다운 악녀(惡女)』의 각본으로 등단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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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 거주했던 문학평론가. 백철(白鐵)[1908~1985]은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활동한 대표적 문학평론가이다. 백철은 1908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났다. 1927년 신의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하였다. 1931년 도쿄 고등사범학교 영문학과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 시기 전일본무산자예술연맹에 가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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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에 거주했던 시인. 서정주(徐廷柱)[1915~2000]의 본관은 달성(達城), 호는 미당(未堂)이다. 서정주의 초기 시가 보여주었던 심미적 근대성은 그 이후 ‘영원성’에의 지향으로, 혹은 전통주의로 변모한다. 서정주는 1915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출생했다. 1930년 광주학생운동과 관련해 구속되었다가 기소유예로 석방되나, 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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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의 전신인 서라벌예술대학을 나온 작가. 송상옥(宋相玉)[1938~2010]은 1981년 3월 미국으로 이주한 후, 미주한인의 삶에 대해 서술하기 시작했다. 송상옥의 소설은 주로 이민 세대들이 삶 속에서 겪는 문화충격, 심리적 갈등을 다루고 있다. 송상옥은 1938년 일본 토야마현[富山県]에서 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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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이자 문학인. 심훈(沈熏)[1901~1936]은 일제 강점기에 문학·영화·언론 등의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활동한 예술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심훈의 본명은 대섭(大燮), 필명 훈(熏)이다. 심훈은 191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1917년 일본인 수학교사와 갈등을 빚으면서 백지를 제출하여 1년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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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중앙대학교에 재직했던 교수이자 영화배우. 양광남[1933~2009]은 부산대학교 재학 중 극예술연구회에서 활동하였으며 1955년 졸업 후 미국 유학을 떠났다. 귀국 이후에는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의 설립과 운영에 참여하여 중앙대 출신들의 큰 스승으로 불린다. 양광남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이자 예술대학장을 역임하였다.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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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에 거주했던 북청사자놀음 기능보유자. 여재성(呂在成)[1919~2007]은 1951년 월남한 뒤, 북청사자놀음의 보존과 전수를 위해 노력하였다. 여재성은 14세 때 여권숙(呂權淑)에게 퉁소와 북놀이 음악과 앞 뒷채 사자 역의 춤을 배웠다. 1951년 1·4후퇴 때 월남하였고, 사단법인 함경북도 북청민속예술보존회(北靑民俗藝術保存會)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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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중앙대학교 출신의 작가. 이문구(李文求)[1941~2003]는 1963년 『현대문학』에 「다갈라 불망비」, 1966년에 「백결」이 추천되어 등단하는데, 두 작품 모두 서라벌예술대학에서 스승이었던 김동리의 추천을 받은 것이었다. 그만큼 김동리에게 문학적으로 인정받았으나 정치적 성향은 완전히 달랐다. 이문구는 한 수필에서 자유민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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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에 거주한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이봉주(李鳳周)[1926~ ]는 1994년 현재 동작구 신대방동에 거주하고 있다. 이봉주는 1926년 평안북도 정주군 덕언면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아연광산에 취직해 직원 숙소에서 불때는 일을 맡았다. 이북에서 결혼까지 해서 딸까지 얻었지만, 아버지와 딸을 잃고 1948년 월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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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사자암에서 활동했으며, 무형문화재 경제어산보유자로 지정된 승려. 이원명은 1961년 서울 사자암에서 승려 택민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2년 직지사에서 승려 고암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77년 사자암의 주지승려로 부임했고, 무형문화재 범패기능보유자 제50호 벽응 스님과 송암 스님으로부터 각각 상주권공과 범패의식작법을 사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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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에 거주했던 영화배우이자 영화제작자. 이택균(李澤畇)[1926~2011]은 195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배우로, 무성영화시대부터 활동한 배우 석금성의 둘째 아들이다. 어머니 석금성은 토월회에서 배우 활동을 시작한 초창기 여배우이다. 이택균은 화가가 되길 원했으나 배우로 활동하던 어머니 석금성이 대한영화사 간부 정병모에게 추천하여 「육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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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에서 거주한 영화감독. 조정호(趙晶鎬)[1919~ ]는 1919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일본 간사이[關西]대학 전문부(專門部)를 중퇴했다. 1942년 조직된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 연출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1953년 공보처에서 제작한 단편 문화영화 「여군」으로 감독에 데뷔했다. 1956년 집을 나온 가정부인과 인테리 기혼남의 애정문제를 다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