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200634
한자 羅龍煥
영어공식명칭 Na Yong-hwan
이칭/별칭 봉암(逢菴)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서울특별시 동작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조은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4년 8월 7일연표보기 - 나용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일 - 나용환 민족대표 33인
활동 시기/일시 1921년 11월 - 나용환 출옥
몰년 시기/일시 1936년 8월 19일연표보기 - 나용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2년연표보기 - 나용환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66년 - 나용환 국립서울현충원 안장
출생지 나용환 출생지 - 평안남도 성천군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민족대표 33인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독립운동가.

[개설]

나용환(羅龍煥)[1864~1936]은 1919년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가계]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활동 사항]

1864년 8월 7일 평안남도 성천(成川)에서 태어났다. 1894년 동학 입도 후 평안도 일대에서 포교활동을 전개하며 1900년 수접주(首接主), 1902년 대접주, 1903년 의창대령(義昌大領)에 임명되었다. 1905년 12월 동학이 천도교(天道敎)로 바뀐 후, 중앙과 지방 대교구 조직에 따라 제15대 교구장 대리를 맡았다. 1906년 11월 교주 손병희로부터 봉암(逢菴)이라는 도호를 받고 1907년 5월 천도교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등 은장(銀章)을 받았다. 1909년에 천도교인 5천 호를 통솔하는 도령(道領)과 신도사(信道師)가 되었다. 1910년에는 천도교중앙총부 현기사장(玄機司長) 직을 맡았다. 1910년 12월 천도교 체제 개편으로 중앙총부 공선관장(共宣觀長)이 되었고 1917년에는 천도교 원로로서 도사(道師)에 임명되었다.

1919년 2월 24일 천도교 기도회 보고와 고종 장례식을 보기 위해 상경했다가 2월 26일 권동진 집에서 오세창 등 천도교 중진들을 만나 독립선언에 대한 계획을 듣고 동의했다. 2월 27일에 3월 1일 오후 2시에 있을 독립선언식 거행에 동의하고 민족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날인했다. 3월 1일 오후 2시, 태화관에 모인 민족대표 29명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식을 마친 후 자진 체포되어 경무총감부에 구금되었다. 1920년 10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제7조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경성감옥으로 이감되어 1921년 11월 만기 출옥했다.

출옥 후 1922년 종무원 경리과 주임, 천도교중앙총부 고문에 임명되었고 9월 종리사로 당선되었다. 1923년에는 강도사가 되었다. 1925년 천도교가 신파와 구파로 분리되자 최린이 이끄는 신파에 가담해 중앙종리원 종법사에 선임되었고 1930년 종법사장, 1932년 법정(法正)에 선정되었다. 이후 중앙종리원 고문으로 활동하다 1936년 8월 19일 서울 소격정(昭格町) 자택에서 사망했다.

[묘소]

1966년 5월 18일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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