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4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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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竹鄭公神道碑 |
영어공식명칭 | Sujukjeonggong's Memorial Ston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엄기석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552년(명종 7) - 정창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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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636년(인조 14) - 정창연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655년 - 수죽정공신도비 건립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11월 3일 - 수죽정공신도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2호 지정 |
문화재 해지 일시 | 2008년 12월 30일 - 수죽정공신도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2호 지정 해지 |
현 소재지 | 수죽정공신도비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산32-2 까치산공원 내 |
성격 | 비석 |
관련 인물 | 정창연|정유길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너비,두께) | 높이 303㎝|비신 높이 228㎝|비신 폭 84㎝|비신 두께 26.5㎝ |
소유자 | 동래 정씨 문중 |
관리자 | 동래 정씨 문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2호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동래 정씨 임당공파 묘역 안에 있는 수죽 정창연의 신도비.
[개설]
수죽정공신도비(水竹鄭公神道碑)는 조선 인조 연간 좌의정을 지낸 정창연(鄭昌衍)[1552~1636]의 신도비이다. 정창연은 임당공 정유길(鄭惟吉)[1515~1588]의 아들로 자는 경진(景眞), 호는 수죽(水竹)이다. 1579년(선조 12)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좌랑, 동부승지 등의 관직을 거쳤고 1614년(광해군 6) 우의정에 이어 좌의정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영창대군(永昌大君)이 유배지에서 죽고 인목왕후(仁穆王后)를 폐위하자는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인조가 즉위하자 다시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건립 경위]
수죽정공신도비는 1655년(효종 6) 12월에 수죽(水竹) 정창연의 공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위치]
수죽정공신도비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산32-2의 까치산공원 내에 있는 정유길의 신도비인 임당정공신도비(林塘鄭公神道碑) 아래에 위치해 있다.
[형태]
수죽정공신도비는 받침석인 대석(臺石), 비의 몸체인 비신(碑身), 머릿돌인 이수(螭首)를 모두 갖추고 있다. 신도비의 일반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화강암 대석 위에 비신을 세우고 비신과 이수는 하나의 돌로 조각되었다. 신도비의 전체 높이는 303㎝이고, 비신의 높이는 228㎝, 비신의 폭은 84㎝, 비신의 두께는 26.5㎝이다. 네모난 대석 각 측면에는 뿔 달린 기린이 조각되어 있고, 대석의 어깨 부분도 복판복련문(複瓣覆蓮紋)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금석문]
수죽정공신도비의 비문은 인조 대의 문신인 이경여(李敬輿)가 지었고, 비석의 몸체 꼭대기에 사방으로 둘러 전서체로 새긴 글인 두전(頭篆)은 한성부윤을 지낸 여이징(呂爾徵)이 썼으며, 글씨는 만사(晩沙) 심지원(沈之源)이 썼다.
[현황]
수죽정공신도비는 1984년 11월 3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2호로 등록되었으나 2008년 12월 30일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다. 현재 동래 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수죽정공신도비는 좌대에 새긴 기린상과 이수 조각이 우수한 편이며, 비문의 내용과 서체는 조선 후기 문장가들이 남긴 것으로 17세기 신도비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문화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