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465 |
---|---|
한자 | 鷺江書院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본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엄기석 |
건립 시기/일시 | 1695년 - 노강서원 건립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97년 - 노강서원 사액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7년 10월 13일 - 노강서원 경기도 시도기념물 제41호 지정 |
현 소재지 | 노강서원(鷺江書院) -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동일로122번길 153[장암동 산146-1] |
원소재지 | 노강서원(鷺江書院) -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로23가길 23[본동 494] 래미안 트윈파크 |
성격 | 서원 |
정면 칸수 | 앞면 3칸 |
측면 칸수 | 옆면 2칸 |
소유자 | 반남박씨 백석공파 종중 |
관리자 | 반남박씨 백석공파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기도 시도기념물 제41호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본동에 설립되었던 조선 후기 문신 박태보를 배항하던 서원.
[개설]
노강서원은 1689년(숙종 15) 남인이 서인을 다시 몰아내고 재집권한 정치적 사건인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죽음으로 간언하였던 박태보(朴泰輔)[1654~1689]를 추모하기 위하여 1695년(숙종 21) 지방 유림의 공의(公議)로 세운 서원이다. 박태보는 기사환국의 원인이 된 인현왕후(仁顯王后)의 폐위를 반대하다가 모진 고문을 받고 진도(珍島)로 유배길에 올랐으나 도중인 노량진에서 옥독(獄毒)으로 인해 죽고 말았다. 이후 박태보가 죽은 노량진 일대에 서원을 처음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위치]
노강서원은 원래 서울특별시 동작구 본동 가칠목마을에 있었다. 현재는 경기도 의정부시 동일로122번길 153[장암동 산146-1]으로 이전하여 위치해 있다.
[변천]
1695년(숙종 21) 박태보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지방 유림의 공의로 서원이 건립되었다. 이후 1697년(숙종 23) 조윤벽(趙潤璧) 등의 청액소(請額疏)로 ‘노강(鷺江)’이라 사액받고 노강서원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1754년(영조 30) 중건되었고, 고종 연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에도 훼철되지 않았던 47개 서원 중 하나로 남기도 하였다. 1925년 한강 대홍수 때 침수되었다가 다시 중건하였으며, 1950년 6·25전쟁으로 소실되었다. 이후 1968년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의 충렬사 터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2021년 현재 노강서원의 경내 건물은 사당, 동재·서재, 고직사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교육장소인 강당은 없으며 박태보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맞배지붕이다. 유생들이 공부하는 공간인 동재와 서재는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로 앞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현황]
노강서원에서는 매년 3월 중정(中丁)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1977년 10월 13일 경기도 시도기념물 제41호로 지정되어 반남박씨 백석공파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문신 박태보의 충절을 기리는 공간으로 노량진동에 처음 건립되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았으나, 대홍수로 침수 피해를 입었다. 곧 중건되었지만, 6·25전쟁으로 다시 소실되었고, 이후 의정부로 이전하였다. 여러 차례 건물이 유실되었음에도 명맥을 잇는 서원으로 남아 있어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