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2003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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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동작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장경호 |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의 개항기부터 광복 이전까지의 역사.
[개설]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의 근대 시기 가장 중요한 사건은 경인선 개발과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의 도시정책[시구개수안, 경성시가지계획안]으로 볼 수 있다. 이 사건들을 통해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의 교통이 지금의 모습을 띄게 되었다.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이 근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교통이 발전되기 시작된 시점은 철도가 들어와 1899년 인천-노량진 간 경인철도가 운영되어 영업이 시작된 것을 기점으로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이 본격적으로 도시계획에 포함된 것은 경성시구개수 이후에 일이다. 1912년 조선총독부의 경성시구개수에 따라 시구개수당시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본동리[본동], 노량진리[노량진동], 번대방리[대방동, 신대방동] 시흥군 신동면[사당동], 동작정[동작동]]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1919년 시구개수안이 수정되고 도심부 순환과 외곽[용산, 마포]이 이 안에 포함되었다. 한강과 바로 연결된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과도 연결된 이 지역들의 도로가 개발됨에 따라 교역망이 넓어지게 되었다.
1936년 경성시가지계획은 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 주택지 개발이 활발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경성시구개수와는 달리 시가지계획은 서울 중심부[도성 안] 외곽 지역 뿐만 아니라 한강 이남 지역까지를 본격적으로 개발하는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1936년 5월 도시계획조사위원회에서는 구체적인 시가지계획안 입안을 실시했다. 이때 본격적으로 외곽지역을 개발하였는데, 한강 이남지역은 영등포와 노량진 두 지역으로 나누었다.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해당하는 지역은 흑석리, 본동리, 노량진리, 상도리 등이었다. 『매일신보』 1934년 4월 7일자에서는 공업지역이 확대되었을때 배후 주택지로의 적당하다고 언급하였다.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인 시흥군 북면의 번대방리, 노량진리, 본동, 흑석리, 동작리, 시흥군 동면 상도리가 포함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토지구획이 시작된 것은 1940년대 이후에서 부터였는데 1941년 번대방정 927,300평, 1942년 번대 491,200평, 1943년 흑석정 342,500평, 상도정 487,000평, 1944년 상도 396,100평, 1945년 동작정 270,200평, 1946년 동작 180,000평이다.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의 명칭은 근대에 여러차례 그 지명의 변천과정을 거쳤다. 1914년에 금천군·과천군·안산군이 통합되어 시흥군으로 개편되었고,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111호에 의해 경기도 시흥군 북면[번대방리, 노량진리, 본동리, 흑석리, 동작리], 신동면[사당리], 동면[상도리] 지역이 되었다.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8호에 의해 경성부 구역이 확장함에 따라 노량진, 본동리, 흑석리, 동작리, 번대방리 일부, 상도리가 경성부에 편입되어 영등포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또한 상도리는 상도정, 본동리는 본동정, 노량진리는 노량진정, 번대방리는 번대방정, 흑석리는 흑석정, 동작리는 동작정 등 일본식 명칭이 붙여지게 되었다. 1943년 4월 1일 출장소가 폐지되고 6월 10일 구제도로 고쳐지고 영등포구가 설치되고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이 여기에 속하였다. 1946년 9월 28일 군정법령 제106호에 의거 영등포구역소가 서울시 영등포구청으로 변경되어 일본식 동명이 폐지되고 비로소 동작동, 흑석동, 본동, 노량진동, 상도동, 대방동 등의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